랄리벨라에서 아디스아바바 가는 길은 이디오피아 여행중 가장 쉬웠던 구간 같다.
1박2일이 걸려서 도착한 아디스아바바...
역시 찢어지게 가난한 나라의 수도도 역시 수도다.
문명의 이기들이 발에 채일만큼 많이 있고(물가가 상당히 비싸다. 인터넷 카페 1시간에 10$)...
아디스아바바에서 한일은 시내 구경외에 케냐 비자를 받는 거였다.
케냐에서 국경 비자를 주는지 확실치 않아서 같은 호텔에 묶고 있는 사람에게 물어 보았다.
나 : 케냐 가는데 국경에서 비자 주니?
호텔 사람 : 케냐 비자? 필요 없는데... 그냥 가면되 무비자야...
나 : 너나 그렇지... 난 이디오피아 국민 아니라서 비자 있어야되
호텔 사람 : 아냐 비자 없어, 그냥 가면 되... 나도 가는 길이야...
안돼겠다. 이 촌스런 놈들은 전 세계 인민이 이디오피아 사람인줄 안다.
그냥 대사관에 물어보려 갔더니 이디오피아쪽 국경에선 비자 안주니 미리 받아야 한단다.
비자피... 50$다. 겁나 비싸다.
그렇게 비자 신청을 하니 며칠 후에 오란다. 기다리지 머...
호텔로 돌아와서 좀전의 그 넘과 또 이야기를 했다.
호텔 사람 : 나 지금 남아공에 일하러 가는 길이야.
나 : 그걸 이렇게 땅으로 가?
호텔 사람 : 응, 비행기표 살 돈이 없어. 이렇게 땅으로 가는게 훨씬 저렴해...
나 : 나야 여행한다고 돌아다니지만... 넌 참 힘들겠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다가 며칠후 비자를 받고 케냐 국경으로 출발했다.
아디스아바바뿐 아니라 그동안 거쳤던 도시마다 꽤 오래된것 같은 교회 건물들을 많이 보았다.
그 교회들이 티벳의 불교 사원과 비슷한 이미지를 가졌다.
단청같이 칠해놓은 교회 처마들, 십자가 주위로 길게 늘어 놓은 만장 같은 깃발들...
이동중에 만난 현지인들에게 물어 보았다. 이디오피아 정교회도 기독교와 같은 경전을 사용하느냐고...
같은 경전을 사용 한단다. 성경이라고 부르는...
이디오피아에 펴지면서 아프리카 토착 종교들의 문화가 많이 흡수 되어서 그런가... 보이는 모습이 많이 흥미로웠다.
2011년 4월 6일 수요일
랄리벨라...
며칠간 랄리벨라의 지하 요새같은 유적속에서 행복하게 보냈다.
유적이 날 행복하게 해준건 아니고 그 동네의 꼬마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더 행복했었다.
그리고 랄리벨라 한쪽 구석에 토요일 이면 열리는 거대한 시장...
거기에 나온 사람들... 다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다. 랄리벨라가 꽤 넓은 동네인가 보다.
별걸 다 판다. 당나귀, 말, 염소 같은 가축을 끌고 와서 파는 사람들도 있고
저런걸 어디다 쓸까 하는 쓰레기 같은 물건들을 가지고 와서 파는 사람들도 있다.
가장 인상 깊었던건 자동차 폐타이어를 길게 잘라낸 밧줄로 엮어놓은 신발.
한국의 짚신과 비슷해 보이는데 재료가 짚이 아니라 자동차 타이어라는 거.
엄청 튼튼하겠지... 그리고 발도 많이 아프겠지...
얼마나 가진게 없으면 저런걸로 신발을 만들어서 신고 다녀야 하는 걸까.
악슘에서 울컥했던 그런 안타까움이 시장 여기저기서 베어 나온다.
기온도 쾌적하고(고원지대라 별로 안 덥다), 물도 풍부해 보이고, 땅도 좋아서 농사도 잘 될것 같은데 왜 이렇게 못사는 걸까...
1달러도 안되는 일당을 벌기 위해서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이디오피아를 떠난후에도 계속 눈에 밟혔다.
그리고 외국인에게 자존심도 없이 구걸하러 덤비는 젊은이 들을 보면서 화가 나고, 가슴이 아파서 안만나려고, 이야기 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며 다녔다.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 라는 둥... 그런 말은 하지 않겠다.
현재의 배부름(사실 배 부른것도 아니다.)보다 더 큰 배부름이 있는걸 몰라서 행복한 그런 행복... 하나도 안 부럽다.
수단에서도, 그전의 이집트에서도, 그전의 요르단과 시리아 에서도 이렇게 찢어지는 가난함은 보지 못했다. 내가 여행하면서 보아온 사람들 중에 가장 가난 했던 곳...
동네 아이들한테 외국 동전 모으는 경쟁이 있었던거 같다.
아이들이 서로 자기의 동전을 보여 주면서 나에게 한국 동전이 있으면 달라고 조른다.
한국동전... 당연히 없다.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그동안 다녔던 나라들에서 조금씩 남았던 동전을 꺼내서 나눠주고...
이 넘들이 동전을 받으면서도 크기가 작거나 모양이 너무 평범하면 별로 고마워 하지 않는다.
많이 모은 아이들은 정말 별의 별 나라 동전을 다 가지고 있었다. 이 산골짜기에서 재주도 좋다...
아디스아바바로 가기 위해서 버스표를 사러 갔는데 지금 비로 길이 쓸려내려가서 버스가 끊어 졌단다. 언제 가냐니까 내일 다시 와보라는 말만...
어짜피 한번에 아디스아바바로 가지는 못할거라... 그냥 여유있게 버스 다닐때 까지 기다리다가 버스표를 샀다.
유적이 날 행복하게 해준건 아니고 그 동네의 꼬마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더 행복했었다.
그리고 랄리벨라 한쪽 구석에 토요일 이면 열리는 거대한 시장...
거기에 나온 사람들... 다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다. 랄리벨라가 꽤 넓은 동네인가 보다.
별걸 다 판다. 당나귀, 말, 염소 같은 가축을 끌고 와서 파는 사람들도 있고
저런걸 어디다 쓸까 하는 쓰레기 같은 물건들을 가지고 와서 파는 사람들도 있다.
가장 인상 깊었던건 자동차 폐타이어를 길게 잘라낸 밧줄로 엮어놓은 신발.
한국의 짚신과 비슷해 보이는데 재료가 짚이 아니라 자동차 타이어라는 거.
엄청 튼튼하겠지... 그리고 발도 많이 아프겠지...
얼마나 가진게 없으면 저런걸로 신발을 만들어서 신고 다녀야 하는 걸까.
악슘에서 울컥했던 그런 안타까움이 시장 여기저기서 베어 나온다.
기온도 쾌적하고(고원지대라 별로 안 덥다), 물도 풍부해 보이고, 땅도 좋아서 농사도 잘 될것 같은데 왜 이렇게 못사는 걸까...
1달러도 안되는 일당을 벌기 위해서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이디오피아를 떠난후에도 계속 눈에 밟혔다.
그리고 외국인에게 자존심도 없이 구걸하러 덤비는 젊은이 들을 보면서 화가 나고, 가슴이 아파서 안만나려고, 이야기 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며 다녔다.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 라는 둥... 그런 말은 하지 않겠다.
현재의 배부름(사실 배 부른것도 아니다.)보다 더 큰 배부름이 있는걸 몰라서 행복한 그런 행복... 하나도 안 부럽다.
수단에서도, 그전의 이집트에서도, 그전의 요르단과 시리아 에서도 이렇게 찢어지는 가난함은 보지 못했다. 내가 여행하면서 보아온 사람들 중에 가장 가난 했던 곳...
동네 아이들한테 외국 동전 모으는 경쟁이 있었던거 같다.
아이들이 서로 자기의 동전을 보여 주면서 나에게 한국 동전이 있으면 달라고 조른다.
한국동전... 당연히 없다.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그동안 다녔던 나라들에서 조금씩 남았던 동전을 꺼내서 나눠주고...
이 넘들이 동전을 받으면서도 크기가 작거나 모양이 너무 평범하면 별로 고마워 하지 않는다.
많이 모은 아이들은 정말 별의 별 나라 동전을 다 가지고 있었다. 이 산골짜기에서 재주도 좋다...
아디스아바바로 가기 위해서 버스표를 사러 갔는데 지금 비로 길이 쓸려내려가서 버스가 끊어 졌단다. 언제 가냐니까 내일 다시 와보라는 말만...
어짜피 한번에 아디스아바바로 가지는 못할거라... 그냥 여유있게 버스 다닐때 까지 기다리다가 버스표를 샀다.
2011년 4월 1일 금요일
악슘에서 랄리벨라로...
성괘가 묻혀 있다는 악슘을 뒤로하고 랄리벨라로 향했다.
역시 새벽에 버스를 탔는데 오후 1시쯤 어느 보잘것 없는 동네에 내려준다.
숙소도 별로 만만한게 없고... 시간도 너무 일러서 어떻게든 그날내로 랄리벨라로 가고 싶었다.
여기저기 교통편이 없는지 물어보고 다니다가
궁하면 통한다고 버스를 찾았다.
이디오피아는 정통 기독교 국가다. 기독교 성지도 여러군데 있고
많은 사람들이 정교회 신자이다. 성괘도 이디오피아에 묻혀 있다는 정도니...
내가 찾은 버스가 이디오피아 정교회 신자들이 "성지순례" 가는 전세버스 였다.
랄리벨라 라는 곳이 이디오피아 기독교 성지여서 많은 사람들이 성지 순례를 간다고...
전세버스라고해서 한국 전세버스 처럼 편안히 갈 수 있는건 아니었다.
삐걱 거리는 의자에 사람들이 앉고 많은 수는 서서 간다.
그래도 그게 어디냐. 나도 그 속에 서서 가고 있었다.
성지순례 가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상당히 신실해 보였다. 기도를 하고, 찬송을 하고...
아프리카 사람들이 부르는 찬송가 들어 본적 있는가?
정말 아름답다.
글로 써서 표현하려니 내 글재주로 어케 말 할 수가 없다.
아프리카 풍의 음악을 한번쯤은 들어들 보셨을거다.
그런 풍으로 찬송가를 부르는데 하머터면 전도 당할뻔 했다.
(참고로 난 기독교에 그다지 호의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런 버스를 타고 굽이 굽이 산길을 돌아서 랄리벨라에 들어갔다.
호텔을 이곳저곳 알아 보다가 만만한 가격에 괜찮은 품질의 호텔을 찾았다.
짐을 풀고 동네 한바퀴를 돌다가 아는 얼굴이 보인다.
터키 이스탄불에 있는동안 만났던 일본인.
나보다 1주일 정도 먼저 이곳에 도착해 있었다. 지금 자전거로 여행하는 중인 이상한 넘...
수단을 어케 자전거 타고 지나 왔을까...
그 친구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데 참 기구하게 살고 있었다.
지금 묶고 있는 호텔에서 빈대에 물려 허리 주위가 완전히 초토화된...
싸구려 맥주 한잔 마시면서 여행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진다.
랄리벨라에는 지하 교회가 11군데가 있다. 랄리벨라 지역에 여기저기 퍼져 있어서
차를 빌리지 않으면 전부를 보기는 어렵고 사람들 사는 거주 지역에 집중되어 있는
몇개의 지하 교회를 구경하는게 일반적이다.(제일 많고 제일 화려하다.)
입장권을 구입하면 1주일이 유효하고 1주일내에 어디나 들어가서 구경을 할 수 있다.
좀 비싼 가격이지만(지금 얼마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입장권을 샀다.
어린시절 "마징가 제트" 라는 만화영화를 본적이 있을거다. 아직 어린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그 만화영화를 보면 "헬 박사" 라는 양반이 산속을 파 놓고 만든 지하 기지에서
매주 1대씩 전투 로봇을 만들어 낸다.
그 지하 기지...가 생각나는 랄리벨라의 교회들.
산을 통째로 깍거나 산속을 파고 들어가서 신전이나 주거 지역을 만들어 놓은 것을
여러곳에서 보았다.
터키의 카파도키야, 요르단의 페트라.
둘다 명함 접고 죽어야 한다.
터키는 그냥 굴 파고 그안의 공간에 사람이 살았다.
페트라는 바위산을 바깥에서 조각해서 신전을 만들었다.
랄리벨라 교회는 바위산 안쪽을 파고 들어가서 그 안에 교회를 조각해 놓았다.
그냥 파 내서 큰 공간을 만든게 아니다.
동굴안에 교회가 한채 서 있는데 그 교회를 바깥의 자재로 쌓아서 지은게 아니고
원래 그곳에 있는 바위를 깍아서 조각해 놓은 거다.
내가 써놓고 내가 읽어도 그 아름다움을 전해주기 참 어렵다.
이런 교회가 800년 이상 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신앙의 힘이라는게 참 대단하다.
솔로몬과 시바의 여왕에 나오는 시바 씨가 이디오피아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얼핏 들었다.
그 만큼 이 나라는 기독교와 관련이 깊은 나라라는거...
잠깐 다르데로 새자.
이디오피아 여성들의 외모는 참 아름답다.
흑인하면 떠오르는 납작한 코, 두툼한 입술의 얼굴이 아니고 오똑한 콧날, 갸름한 입술, 볼륨있는 몸매...
이디오피아 돌아 다니는 내내 눈이 즐거웠다.
그리고 에이즈... 왜 그렇게 에이즈가 많은지 모르겠다. 무지 때문이겠지...
그래서 이디오피아는 왠만한 호텔에 가면(배낭여행자가 가는 저렴한 호텔도) 방마다 콘돔이 비치되어 있다.
그리고 커피...
랄리벨라에서 묶는 동안 주방 아주머니 부부가 커피를 마시기 위해 원두를 볶는걸 구경했다.
같이 옆에 쪼그리고 앉아서 사진도 찍고 이야기도 하면서 기다기리를 약 1시간...
볶은 원두를 빻고, 즉석에서 커피를 내려 마셨는데
내가 커피먹고 감동하기는 처음 이었다.
아마 그게 "신선함"의 맛인가 보다. 그 커피 마시러라도 이디오피아에 한번 더 가고 싶다.
랄리벨라에 와서야 이디오피아에 온 보람을 느꼈다.
역시 새벽에 버스를 탔는데 오후 1시쯤 어느 보잘것 없는 동네에 내려준다.
숙소도 별로 만만한게 없고... 시간도 너무 일러서 어떻게든 그날내로 랄리벨라로 가고 싶었다.
여기저기 교통편이 없는지 물어보고 다니다가
궁하면 통한다고 버스를 찾았다.
이디오피아는 정통 기독교 국가다. 기독교 성지도 여러군데 있고
많은 사람들이 정교회 신자이다. 성괘도 이디오피아에 묻혀 있다는 정도니...
내가 찾은 버스가 이디오피아 정교회 신자들이 "성지순례" 가는 전세버스 였다.
랄리벨라 라는 곳이 이디오피아 기독교 성지여서 많은 사람들이 성지 순례를 간다고...
전세버스라고해서 한국 전세버스 처럼 편안히 갈 수 있는건 아니었다.
삐걱 거리는 의자에 사람들이 앉고 많은 수는 서서 간다.
그래도 그게 어디냐. 나도 그 속에 서서 가고 있었다.
성지순례 가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상당히 신실해 보였다. 기도를 하고, 찬송을 하고...
아프리카 사람들이 부르는 찬송가 들어 본적 있는가?
정말 아름답다.
글로 써서 표현하려니 내 글재주로 어케 말 할 수가 없다.
아프리카 풍의 음악을 한번쯤은 들어들 보셨을거다.
그런 풍으로 찬송가를 부르는데 하머터면 전도 당할뻔 했다.
(참고로 난 기독교에 그다지 호의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런 버스를 타고 굽이 굽이 산길을 돌아서 랄리벨라에 들어갔다.
호텔을 이곳저곳 알아 보다가 만만한 가격에 괜찮은 품질의 호텔을 찾았다.
짐을 풀고 동네 한바퀴를 돌다가 아는 얼굴이 보인다.
터키 이스탄불에 있는동안 만났던 일본인.
나보다 1주일 정도 먼저 이곳에 도착해 있었다. 지금 자전거로 여행하는 중인 이상한 넘...
수단을 어케 자전거 타고 지나 왔을까...
그 친구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데 참 기구하게 살고 있었다.
지금 묶고 있는 호텔에서 빈대에 물려 허리 주위가 완전히 초토화된...
싸구려 맥주 한잔 마시면서 여행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진다.
랄리벨라에는 지하 교회가 11군데가 있다. 랄리벨라 지역에 여기저기 퍼져 있어서
차를 빌리지 않으면 전부를 보기는 어렵고 사람들 사는 거주 지역에 집중되어 있는
몇개의 지하 교회를 구경하는게 일반적이다.(제일 많고 제일 화려하다.)
입장권을 구입하면 1주일이 유효하고 1주일내에 어디나 들어가서 구경을 할 수 있다.
좀 비싼 가격이지만(지금 얼마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입장권을 샀다.
어린시절 "마징가 제트" 라는 만화영화를 본적이 있을거다. 아직 어린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그 만화영화를 보면 "헬 박사" 라는 양반이 산속을 파 놓고 만든 지하 기지에서
매주 1대씩 전투 로봇을 만들어 낸다.
그 지하 기지...가 생각나는 랄리벨라의 교회들.
산을 통째로 깍거나 산속을 파고 들어가서 신전이나 주거 지역을 만들어 놓은 것을
여러곳에서 보았다.
터키의 카파도키야, 요르단의 페트라.
둘다 명함 접고 죽어야 한다.
터키는 그냥 굴 파고 그안의 공간에 사람이 살았다.
페트라는 바위산을 바깥에서 조각해서 신전을 만들었다.
랄리벨라 교회는 바위산 안쪽을 파고 들어가서 그 안에 교회를 조각해 놓았다.
그냥 파 내서 큰 공간을 만든게 아니다.
동굴안에 교회가 한채 서 있는데 그 교회를 바깥의 자재로 쌓아서 지은게 아니고
원래 그곳에 있는 바위를 깍아서 조각해 놓은 거다.
내가 써놓고 내가 읽어도 그 아름다움을 전해주기 참 어렵다.
이런 교회가 800년 이상 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신앙의 힘이라는게 참 대단하다.
솔로몬과 시바의 여왕에 나오는 시바 씨가 이디오피아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얼핏 들었다.
그 만큼 이 나라는 기독교와 관련이 깊은 나라라는거...
잠깐 다르데로 새자.
이디오피아 여성들의 외모는 참 아름답다.
흑인하면 떠오르는 납작한 코, 두툼한 입술의 얼굴이 아니고 오똑한 콧날, 갸름한 입술, 볼륨있는 몸매...
이디오피아 돌아 다니는 내내 눈이 즐거웠다.
그리고 에이즈... 왜 그렇게 에이즈가 많은지 모르겠다. 무지 때문이겠지...
그래서 이디오피아는 왠만한 호텔에 가면(배낭여행자가 가는 저렴한 호텔도) 방마다 콘돔이 비치되어 있다.
그리고 커피...
랄리벨라에서 묶는 동안 주방 아주머니 부부가 커피를 마시기 위해 원두를 볶는걸 구경했다.
같이 옆에 쪼그리고 앉아서 사진도 찍고 이야기도 하면서 기다기리를 약 1시간...
볶은 원두를 빻고, 즉석에서 커피를 내려 마셨는데
내가 커피먹고 감동하기는 처음 이었다.
아마 그게 "신선함"의 맛인가 보다. 그 커피 마시러라도 이디오피아에 한번 더 가고 싶다.
랄리벨라에 와서야 이디오피아에 온 보람을 느꼈다.
2011년 3월 27일 일요일
악슘, 악슘, 악슘...
이디오피아의 룩소르는 정말 장관이다.
그 거대한 석조 유적들...
앞서 말했다. "이집트에 룩소르가 있다면 이디오피아에 악슘이 있다."
악슘에서 론리에 나와 있는 호텔을 찾아 숙소를 정했다.
마당을 중심으로 사각형으로 지어진 호텔 건물... 멀찍이서 새와 원숭이들 울음 소리가 들리고 바나나 나무 같은 열대 식물이 마당을 가득 메운 아름다운 도시..
누군가 악슘을 방문하고자 한다면 미리 그 곳의 역사를 충분히 공부하고 가기를 권장한다.
악슘엘 가면 "거대한 유적이 있었던" 터가 많다. 참 우울하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바람따라 움직이는 배낭여행자한테 악슘은 너무나 황당한 곳이었다.
아는게 없으니...
시미엔 국립공원에 이어서 악슘까지... 정말 이디오피아는 계속 나를 힘들게 만든다.
악슘 오기가 얼마나 힘들었는데... 그 고생을 하면서 도착한 악슘은 그냥 "터" 만 있는 유적이 나를 맞이한다. 천년도 전에 무슨 문명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래도 나는 유적지를 따라 다니는 취향이 아니라 이곳에서도 시장과 동네를 구경하며 한적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눈 언저리에 파리를 서너마리씩 달고 다니는 동네 아이들(파리가 눈꼽 빨아 먹으려고 눈 언저리에 붙어 있다. 아무도 그 파리를 쫒아내지 않고 그냥 달고 다닌다.)과 나한테 머 하나라도 팔려고 애쓰는 기념품 행상들...
이디오피아에 먹을게 많다는 이야기는 이미 했다. 음식 종류도 다양하고 맛있는 것도 많다.
특히 바나나. 바나나에서 복숭아 향기가 난다. 엄지 손가락보다 살짝 더 길고 두툼한 바나나가 참 맛있었다.
악슘의 무슨 무덤이었다는 유적지(야트막한 산 꼭대기에 있었다.)에 올라가다 보면 동네 꼬마들이 반갑게 인사를 해준다.(주로 "you, you, you" 하고 떠든다. 꼬마부터 할아버지까지 나이에 관계없이... 이게 인사인지 욕인지는 모르겠다. -.-)
정상에 어느 백인 가족(유럽에서 온듯 하다.)이 있고 아버지가 아이들에게 뭔가 열심히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 옆에 구걸하러 서 있는 이디오피아 꼬마들...
눈물이 울컥 난다. 똑같은 아이들인데, 누구는 유럽에서 태어나서 이곳으로 여행을 오고 누구는 그 옆에서 one dollar, one dollar 하면서 구걸을 하고 있다. 구걸하는 아이들도 불쌍하지만... 그 아이들은 이미 그게 일상이다. 외국인에게 give me one dollar, give me one dollar...
이미 부끄러움 같은건, 자존심 같은건 기억에 없어져 버린 그 아이들. 그리고 그 아이들을 보고 있는 그 백인 가족의 아이들... 저 아이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백인 우월주의가 생길까? 아니면 안타까움에 가슴에 상처가 남을까?
아프리카를 여행하면서 그런 가슴 아픈 광경을 많이 봤지만 이디오피아가 유난히 더 힘들었던것 같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아래쪽에 조그만 저수지 같은게 있다. 물이 별로 깨끗해 보이지는 않는다.
학교에 가는 아이들은 모두 조그만 물통 같은걸 하나씩 들고 다닌다. 그걸로 뭐 하냐고 물어보니까 집에 갈때 물 한통씩 채워서 가져가야 한단다. 참 힘들게들 살고 있다. 그나마 지금은 저수지에 물이 있어서 길어 먹을 수 있지만 갈수기에는 더 멀리 가야한단다.
노르웨이의 오슬로 유스호스텔에서 이디오피아 출신 사람을 만났었다. 지금은 노르웨이에서 일을 하고 있고 이디오피아 사람을 만나서 조국을 독재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던 친구... 조국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사람이었고 그사람으로 인해서 이디오피아를 꼭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아프리카에서 한번도 식민화가 되지 않았던 유일한 국가이며, 한때 아프리카에서 가장 잘살던 그 나라가 독재자가 집권하면서 쫄딱 망해버렸다는 거다. 부디 그 친구 성공해서 이디오피아 사람들 잘 살게 되기를 바란다.
개인적으로 아프리카 여행중에 이디오피아 만큼 강하게 기억에 남은 나라도 없었다. 뭐라 딱 집어 말할 수 없는 독특함이 배어 있는 나라... 지금도 다른 사람들이 어느 나라가 가장 좋았냐고 물어 보거나 추천할 여행지를 말해달라고 하면 주저하지 않고 이디오피아를 이야기 한다.
악슘에서의 며칠을 보내고 다음 도시를 정했다.
역시 론리에..."요르단에 페트라가 있다면 이디오피아에 랄리벨라가 있다" 라는 그말 하나보고 랄리벨라를 목적지로 정했다. 또 속는건 아닐까 걱정하면서...
그 거대한 석조 유적들...
앞서 말했다. "이집트에 룩소르가 있다면 이디오피아에 악슘이 있다."
악슘에서 론리에 나와 있는 호텔을 찾아 숙소를 정했다.
마당을 중심으로 사각형으로 지어진 호텔 건물... 멀찍이서 새와 원숭이들 울음 소리가 들리고 바나나 나무 같은 열대 식물이 마당을 가득 메운 아름다운 도시..
누군가 악슘을 방문하고자 한다면 미리 그 곳의 역사를 충분히 공부하고 가기를 권장한다.
악슘엘 가면 "거대한 유적이 있었던" 터가 많다. 참 우울하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바람따라 움직이는 배낭여행자한테 악슘은 너무나 황당한 곳이었다.
아는게 없으니...
시미엔 국립공원에 이어서 악슘까지... 정말 이디오피아는 계속 나를 힘들게 만든다.
악슘 오기가 얼마나 힘들었는데... 그 고생을 하면서 도착한 악슘은 그냥 "터" 만 있는 유적이 나를 맞이한다. 천년도 전에 무슨 문명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래도 나는 유적지를 따라 다니는 취향이 아니라 이곳에서도 시장과 동네를 구경하며 한적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눈 언저리에 파리를 서너마리씩 달고 다니는 동네 아이들(파리가 눈꼽 빨아 먹으려고 눈 언저리에 붙어 있다. 아무도 그 파리를 쫒아내지 않고 그냥 달고 다닌다.)과 나한테 머 하나라도 팔려고 애쓰는 기념품 행상들...
이디오피아에 먹을게 많다는 이야기는 이미 했다. 음식 종류도 다양하고 맛있는 것도 많다.
특히 바나나. 바나나에서 복숭아 향기가 난다. 엄지 손가락보다 살짝 더 길고 두툼한 바나나가 참 맛있었다.
악슘의 무슨 무덤이었다는 유적지(야트막한 산 꼭대기에 있었다.)에 올라가다 보면 동네 꼬마들이 반갑게 인사를 해준다.(주로 "you, you, you" 하고 떠든다. 꼬마부터 할아버지까지 나이에 관계없이... 이게 인사인지 욕인지는 모르겠다. -.-)
정상에 어느 백인 가족(유럽에서 온듯 하다.)이 있고 아버지가 아이들에게 뭔가 열심히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 옆에 구걸하러 서 있는 이디오피아 꼬마들...
눈물이 울컥 난다. 똑같은 아이들인데, 누구는 유럽에서 태어나서 이곳으로 여행을 오고 누구는 그 옆에서 one dollar, one dollar 하면서 구걸을 하고 있다. 구걸하는 아이들도 불쌍하지만... 그 아이들은 이미 그게 일상이다. 외국인에게 give me one dollar, give me one dollar...
이미 부끄러움 같은건, 자존심 같은건 기억에 없어져 버린 그 아이들. 그리고 그 아이들을 보고 있는 그 백인 가족의 아이들... 저 아이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백인 우월주의가 생길까? 아니면 안타까움에 가슴에 상처가 남을까?
아프리카를 여행하면서 그런 가슴 아픈 광경을 많이 봤지만 이디오피아가 유난히 더 힘들었던것 같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아래쪽에 조그만 저수지 같은게 있다. 물이 별로 깨끗해 보이지는 않는다.
학교에 가는 아이들은 모두 조그만 물통 같은걸 하나씩 들고 다닌다. 그걸로 뭐 하냐고 물어보니까 집에 갈때 물 한통씩 채워서 가져가야 한단다. 참 힘들게들 살고 있다. 그나마 지금은 저수지에 물이 있어서 길어 먹을 수 있지만 갈수기에는 더 멀리 가야한단다.
노르웨이의 오슬로 유스호스텔에서 이디오피아 출신 사람을 만났었다. 지금은 노르웨이에서 일을 하고 있고 이디오피아 사람을 만나서 조국을 독재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던 친구... 조국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사람이었고 그사람으로 인해서 이디오피아를 꼭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아프리카에서 한번도 식민화가 되지 않았던 유일한 국가이며, 한때 아프리카에서 가장 잘살던 그 나라가 독재자가 집권하면서 쫄딱 망해버렸다는 거다. 부디 그 친구 성공해서 이디오피아 사람들 잘 살게 되기를 바란다.
개인적으로 아프리카 여행중에 이디오피아 만큼 강하게 기억에 남은 나라도 없었다. 뭐라 딱 집어 말할 수 없는 독특함이 배어 있는 나라... 지금도 다른 사람들이 어느 나라가 가장 좋았냐고 물어 보거나 추천할 여행지를 말해달라고 하면 주저하지 않고 이디오피아를 이야기 한다.
악슘에서의 며칠을 보내고 다음 도시를 정했다.
역시 론리에..."요르단에 페트라가 있다면 이디오피아에 랄리벨라가 있다" 라는 그말 하나보고 랄리벨라를 목적지로 정했다. 또 속는건 아닐까 걱정하면서...
이디오피아 곤도르에서 악슘으로...
곤도르에서 성 구경도 하고 동네 시장도 돌아 다니면서 또 휴식 시간을 가졌다.
이넘의 아프리카... 이동이 너무 힘들다. 한번 이동하면 진이 빠져서 며칠 푹 쉬어야 한다.
며칠을 쉰 후... 시미엔 국립공원이 있는 동네로 이동하기 위해 교통편을 알아봤다.
이디오피아의 교통편은 여행자를 좀 불편하게 한다.
단순히 도로가 비포장이고, 차가 낡아서 그런 문제만은 아니다. 불편한 도로/차량은 이미 익숙하다. 여행자를 힘들게 하는건... 시간이다.
첫째, 이 나라의 독특한 시간 체계를 사용하기 때문에 항상 국제 시간으로 몇시 출발인지 확인을 해야 한다. 깜박 실수하면 내차는 이미 반나절 전에 떠나고 없을 수도 있다.
둘째, 너무 일찍 출발한다. 보통 인터시티 버스의 출발 시간이 새벽 4시다. 미친다. 새벽 4시에 버스 타려면 3시에는 일어나서 아침먹고 화장실도 다녀와야 버스터미널에 갈 수 있다. 다행히 이디오피아 여행하는 동안 늦잠자서 차를 놓친적은 없다.
세째, 좀 거리가 되는 곳은 한번에 못간다. 새벽 4시에 출발한 버스가 오후 2시쯤 중간 도시에 도착하면 그걸로 끝이다. 거기서 일박하고 다음날 새벽 4시에 또 다른 버스를 타야 한다. 나야 여행자라 배낭하나 달랑 지고 다니면 되지만 이 나라 사람들 이동할때 가지고 다니는 짐이 1인당 1톤씩은(거짓말 조금 보태서..)되어 보이는데 그거 들고 1박하면서 차 바꿔 타려면 쉬운일이 아닐거다.
네째, 아직 도시간 이동하는 인구가 많지 않은 관계로 사람들이 차멀미를 참 많이 한다. 버스에 타면 좌석에 사람을 다 앉힌후 통로에도 빼곡하게 사람들을 채우는데 그중에 서너명은 반드시 멀미를 한다. 멀미하면... 토한다. 나야 의자에 앉아서 발만 바닥에 딛고 있으면 되지만 그 통로에 주저 앉아 있는 사람들은 어쩌냐... 거기다... 냄새...
시미엔에 도착했다. 공원 입구의 마을이라 별로 볼건 없다. 버스타고 오면서 수도 없이 많은 원숭이도 보고...
시미엔 공원에 가려면 어케해야 하나... 하고 알아 봤는데 비용이 장난이 아니다.
공원 1박당 입장료, 무장한 가이드 일당, 며칠씩 공원에 있어야 하므로 먹어야할 음식과 물을 싣고 다닐 당나귀 대여료, 당나귀 몰이꾼 일당...
가난한 배낭 여행자가 감당하기엔 너무 비싼 금액이다. 산적도 있고, 야생동물도 많아서 무장한 가이드 없이는 못들어 간다고 하고... 짐이 많으니 당나귀는 필수고, 그 가이드가 당나귀도 몰아주면 좋겠구마는 그건 절대로 안된다고 하고...
안타깝지만 포기다... ㅠ.ㅠ
그곳에서 1박후 다음 목표를 악슘으로 정했다.
론리에 써있기를... 이집트에 룩소르가 있다면 이디오피아에 악슘이 있다... 라는 멋진 말 한마디에 혹해서 이디오피아 북쪽, 에리트리아 접경지대의 악슘으로 향했다. 역시 버스는 새벽 4시에 출발하고 중간 마을에 오후에 도착했다.
별로 기억에도 안나는 작은 마을...
물이 귀해서 호텔에 들어 갔더니 1인당 양동이 한개씩 떠주면서 그걸로 다 해결하란다.
어찌 어찌 악슘 도착이다.
이넘의 아프리카... 이동이 너무 힘들다. 한번 이동하면 진이 빠져서 며칠 푹 쉬어야 한다.
며칠을 쉰 후... 시미엔 국립공원이 있는 동네로 이동하기 위해 교통편을 알아봤다.
이디오피아의 교통편은 여행자를 좀 불편하게 한다.
단순히 도로가 비포장이고, 차가 낡아서 그런 문제만은 아니다. 불편한 도로/차량은 이미 익숙하다. 여행자를 힘들게 하는건... 시간이다.
첫째, 이 나라의 독특한 시간 체계를 사용하기 때문에 항상 국제 시간으로 몇시 출발인지 확인을 해야 한다. 깜박 실수하면 내차는 이미 반나절 전에 떠나고 없을 수도 있다.
둘째, 너무 일찍 출발한다. 보통 인터시티 버스의 출발 시간이 새벽 4시다. 미친다. 새벽 4시에 버스 타려면 3시에는 일어나서 아침먹고 화장실도 다녀와야 버스터미널에 갈 수 있다. 다행히 이디오피아 여행하는 동안 늦잠자서 차를 놓친적은 없다.
세째, 좀 거리가 되는 곳은 한번에 못간다. 새벽 4시에 출발한 버스가 오후 2시쯤 중간 도시에 도착하면 그걸로 끝이다. 거기서 일박하고 다음날 새벽 4시에 또 다른 버스를 타야 한다. 나야 여행자라 배낭하나 달랑 지고 다니면 되지만 이 나라 사람들 이동할때 가지고 다니는 짐이 1인당 1톤씩은(거짓말 조금 보태서..)되어 보이는데 그거 들고 1박하면서 차 바꿔 타려면 쉬운일이 아닐거다.
네째, 아직 도시간 이동하는 인구가 많지 않은 관계로 사람들이 차멀미를 참 많이 한다. 버스에 타면 좌석에 사람을 다 앉힌후 통로에도 빼곡하게 사람들을 채우는데 그중에 서너명은 반드시 멀미를 한다. 멀미하면... 토한다. 나야 의자에 앉아서 발만 바닥에 딛고 있으면 되지만 그 통로에 주저 앉아 있는 사람들은 어쩌냐... 거기다... 냄새...
시미엔에 도착했다. 공원 입구의 마을이라 별로 볼건 없다. 버스타고 오면서 수도 없이 많은 원숭이도 보고...
시미엔 공원에 가려면 어케해야 하나... 하고 알아 봤는데 비용이 장난이 아니다.
공원 1박당 입장료, 무장한 가이드 일당, 며칠씩 공원에 있어야 하므로 먹어야할 음식과 물을 싣고 다닐 당나귀 대여료, 당나귀 몰이꾼 일당...
가난한 배낭 여행자가 감당하기엔 너무 비싼 금액이다. 산적도 있고, 야생동물도 많아서 무장한 가이드 없이는 못들어 간다고 하고... 짐이 많으니 당나귀는 필수고, 그 가이드가 당나귀도 몰아주면 좋겠구마는 그건 절대로 안된다고 하고...
안타깝지만 포기다... ㅠ.ㅠ
그곳에서 1박후 다음 목표를 악슘으로 정했다.
론리에 써있기를... 이집트에 룩소르가 있다면 이디오피아에 악슘이 있다... 라는 멋진 말 한마디에 혹해서 이디오피아 북쪽, 에리트리아 접경지대의 악슘으로 향했다. 역시 버스는 새벽 4시에 출발하고 중간 마을에 오후에 도착했다.
별로 기억에도 안나는 작은 마을...
물이 귀해서 호텔에 들어 갔더니 1인당 양동이 한개씩 떠주면서 그걸로 다 해결하란다.
어찌 어찌 악슘 도착이다.
2011년 3월 22일 화요일
만만치 않은 이디오피아 가는 길
카르툼에서 버스를 탔다.
한국산 중고 관광버스다. 엄청 좋다. 수단내 최고급 럭셔리 버스.
이 차 타면 바로 이디오피아 국경까지 가는줄 알았다.
도시 이름은 정확히 기억이 안난다. Al Qadarif 였던가...? 아랍어로 써있는 도시...
거기 갔더니 또 다른차로 갈아타고 국경 가야 한다.
갈아타는 곳이 어딜까? 버스에 내려 주변을 봤는데 전혀 차 갈아탈 만한 곳은 보이지 않는다.
이때 다가오시는 착해보이는 수단 할아버지...
말이 안통한다.
내가 할수 있는 건 그냥 "이디오피아" 라는 단어...
나 : 이디오피아
할아버지 : ?????
나 : 이씨오피아
할아버지 : ?????
나 : 에티오피아
할아버지 : ?????
나 : 에씨오피아
할아버지 : ?????
이렇게 수십차례만에 센스있는 할아버지가 내 말을 알아 들으시고 나를 데려다 주셨다.
버스터미널 이라고 추정되는 곳에서 차가 어떤게 있는지 알아 봤는데... 또 트럭이다.
그 트럭 타고 또 밤새 국경까지 가는 거였다. 이제 트럭만 봐도 멀미가 날거 같은데...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걍 가자.. ㅠ.ㅠ
또 트럭에서 밤을 지새우고... 그나마 위안이 되는건 이디오피아 접경지대는
그다지 덥지 않고, 흙먼지도 많이 안나고, 길도 비포장이지만 평탄하다는 정도...
다음날 오전에 국경에 도착.
일단 수단 이미그레이션에 가서 출국 스탬프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어디지?
좀 그럴듯해 보이는 건물이 없다. 옆에 있던 꼬마가 손가락으로 집 하나를 가르키며
나를 데려간다.
허름한 가게 같은 곳이 수단 이미그레이션...
스탬프 받고 개천하나 건너니까 이디오피아 란다. 동네 사람들은 국경 무시하고
서로 서로 왔다갔다 하면서 편하게들 산다.
그래 국경이 이래야지... 왜 삼엄한 경비들 세우고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 귀찮게 하냐고...
일단 이디오피아에 왔는데 이젠 이디오피아 이미그레이션이 안보인다.
수단쪽은 길가에 있었는데 이디오피아는 마을 안쪽으로 한참 들어가서 오두막집 안에 있다.
검사를 하겠다는 건지 말겠다는 건지... 그냥 지나가도 모를것 같다.
이디오피아 입국일자가 2006년 3월17일...
입국하고 곤도르 라는 도시로 가기 위해서 교통편을 알아본다.
일단 부근의 청년에게 물었다.
나 : 지금 몇시니?
청년 : 오후 3시.
나 : 내가 아침 10시에 수단에서 이리 왔는데 벌써 3시야?
청년 : 이디오피아는 시간이 달라.
나 : (걍 시간 맞추는거 포기한다.)
곤도르 가는 교통편을 알아보는데 쉽지가 않다.
이디오피아는 수단과 또 다르다.
내 주변으로 동네 청년, 꼬마들 10여명이 따라 다니면서
자기가 교통편 알아봐 주겠다. 호텔 소개해 주겠다. 짐들어 주겠다.
난리 법석이다.
수단에서 풀어졌던 긴장을 다시 단단히 조여매야 했다.
겨우 찾아본 교통수단이 또 트럭. 눈물난다. 이넘의 아프리카에는 버스라는게 없는거냐?
그나마 다행히 이번엔 짐칸이 아니고 운전기사 옆자리이고 시간도 얼마 안걸린다.
이디오피아에 들어가면 어느 도시를 가건 외국인에게 뭔가를 바라는 젊은이들이 들어 붙는다.
다 먹고 살기 힘들어서 그렇다는건 알지만 나도 퍽퍽하게 살기는 마찬가지라
그걸 다 챙겨주며 다닐 수 없는 처지다.
나중에는 아예 'No english' 를 입에 달고 살았다.
얘네들 영어 잘한다. 그리고 영어 못한다고 하면 비웃으면서 접근을 안한다.
말이 통해야 무슨 삥을 뜯어도 뜯을것 아닌가.... ^^
그리고 수단에서 못보던 소매치기 미수범도 여럿 잡고... 징헌넘들. 배낭여행자 지갑 털어서
무슨 영화를 누리겠다고...
하여간 곤도르 도착.
여기까지 오는 길이 너무 험해서(이틀 내내 트럭타고 왔다.) 좀 괜찮아 보이는 호텔을 찾았다.
넉넉한 더블룸이 20$정도 였던거 같다.
그 호텔에 방을 잡고 동네 구경을 한다.
수단에 있다가 이디오피아에 오면 입이 호강한다.
음식이 다양하고 맛있는게 너무 많아서 행복해진다.
스파게티 한그릇이 1달러 남짓... 싸다...고 생각했지만 이 나라 사람들 하루 일당이 1달러가
안된다는거 보면 결코 싼게 아니다.
이렇게 이디오피아에서의 여행을 시작한다.
한국산 중고 관광버스다. 엄청 좋다. 수단내 최고급 럭셔리 버스.
이 차 타면 바로 이디오피아 국경까지 가는줄 알았다.
도시 이름은 정확히 기억이 안난다. Al Qadarif 였던가...? 아랍어로 써있는 도시...
거기 갔더니 또 다른차로 갈아타고 국경 가야 한다.
갈아타는 곳이 어딜까? 버스에 내려 주변을 봤는데 전혀 차 갈아탈 만한 곳은 보이지 않는다.
이때 다가오시는 착해보이는 수단 할아버지...
말이 안통한다.
내가 할수 있는 건 그냥 "이디오피아" 라는 단어...
나 : 이디오피아
할아버지 : ?????
나 : 이씨오피아
할아버지 : ?????
나 : 에티오피아
할아버지 : ?????
나 : 에씨오피아
할아버지 : ?????
이렇게 수십차례만에 센스있는 할아버지가 내 말을 알아 들으시고 나를 데려다 주셨다.
버스터미널 이라고 추정되는 곳에서 차가 어떤게 있는지 알아 봤는데... 또 트럭이다.
그 트럭 타고 또 밤새 국경까지 가는 거였다. 이제 트럭만 봐도 멀미가 날거 같은데...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걍 가자.. ㅠ.ㅠ
또 트럭에서 밤을 지새우고... 그나마 위안이 되는건 이디오피아 접경지대는
그다지 덥지 않고, 흙먼지도 많이 안나고, 길도 비포장이지만 평탄하다는 정도...
다음날 오전에 국경에 도착.
일단 수단 이미그레이션에 가서 출국 스탬프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어디지?
좀 그럴듯해 보이는 건물이 없다. 옆에 있던 꼬마가 손가락으로 집 하나를 가르키며
나를 데려간다.
허름한 가게 같은 곳이 수단 이미그레이션...
스탬프 받고 개천하나 건너니까 이디오피아 란다. 동네 사람들은 국경 무시하고
서로 서로 왔다갔다 하면서 편하게들 산다.
그래 국경이 이래야지... 왜 삼엄한 경비들 세우고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 귀찮게 하냐고...
일단 이디오피아에 왔는데 이젠 이디오피아 이미그레이션이 안보인다.
수단쪽은 길가에 있었는데 이디오피아는 마을 안쪽으로 한참 들어가서 오두막집 안에 있다.
검사를 하겠다는 건지 말겠다는 건지... 그냥 지나가도 모를것 같다.
이디오피아 입국일자가 2006년 3월17일...
입국하고 곤도르 라는 도시로 가기 위해서 교통편을 알아본다.
일단 부근의 청년에게 물었다.
나 : 지금 몇시니?
청년 : 오후 3시.
나 : 내가 아침 10시에 수단에서 이리 왔는데 벌써 3시야?
청년 : 이디오피아는 시간이 달라.
나 : (걍 시간 맞추는거 포기한다.)
곤도르 가는 교통편을 알아보는데 쉽지가 않다.
이디오피아는 수단과 또 다르다.
내 주변으로 동네 청년, 꼬마들 10여명이 따라 다니면서
자기가 교통편 알아봐 주겠다. 호텔 소개해 주겠다. 짐들어 주겠다.
난리 법석이다.
수단에서 풀어졌던 긴장을 다시 단단히 조여매야 했다.
겨우 찾아본 교통수단이 또 트럭. 눈물난다. 이넘의 아프리카에는 버스라는게 없는거냐?
그나마 다행히 이번엔 짐칸이 아니고 운전기사 옆자리이고 시간도 얼마 안걸린다.
이디오피아에 들어가면 어느 도시를 가건 외국인에게 뭔가를 바라는 젊은이들이 들어 붙는다.
다 먹고 살기 힘들어서 그렇다는건 알지만 나도 퍽퍽하게 살기는 마찬가지라
그걸 다 챙겨주며 다닐 수 없는 처지다.
나중에는 아예 'No english' 를 입에 달고 살았다.
얘네들 영어 잘한다. 그리고 영어 못한다고 하면 비웃으면서 접근을 안한다.
말이 통해야 무슨 삥을 뜯어도 뜯을것 아닌가.... ^^
그리고 수단에서 못보던 소매치기 미수범도 여럿 잡고... 징헌넘들. 배낭여행자 지갑 털어서
무슨 영화를 누리겠다고...
하여간 곤도르 도착.
여기까지 오는 길이 너무 험해서(이틀 내내 트럭타고 왔다.) 좀 괜찮아 보이는 호텔을 찾았다.
넉넉한 더블룸이 20$정도 였던거 같다.
그 호텔에 방을 잡고 동네 구경을 한다.
수단에 있다가 이디오피아에 오면 입이 호강한다.
음식이 다양하고 맛있는게 너무 많아서 행복해진다.
스파게티 한그릇이 1달러 남짓... 싸다...고 생각했지만 이 나라 사람들 하루 일당이 1달러가
안된다는거 보면 결코 싼게 아니다.
이렇게 이디오피아에서의 여행을 시작한다.
2011년 3월 15일 화요일
수단 카르툼에서 이디오피아 비자 받기
동골라에서 카르툼까지의 여정은 정말 껌이다.
내가 사하라 사막을 트럭타고 3일동안 왔는데 그깟 먼지구덩이 버스쯤이야...
어쨋든 카르툼은 수단의 수도이고, 대부분 국가의 수도는 살기 참 좋게 되어 있다.
카르툼에 도착하면 제일먼저 놀라는게 엄청난 비닐봉지 쓰레기다.
우리가 동네 시장에 콩나물 사면 그거 싸주는 검은색 비닐봉지.
그런 비닐봉지로 거리를 "포장" 해놨다.
제발 카르툼만 그래라. 저 봉지들 사하락 사막에 가져가지 말아라...
카르툼의 시작은 아주 순조로웠다. 론리플래닛에 있는 호텔도 금방 찾고
그닥 깨끗하지는 않아도 아예 화장실이 방에 없어서 이상한 냄새는 안난다.
안타까운건 바퀴벌레가 워낙 큰것들이 많아서...
얼마나 크냐하면 자다가 발자국 소리가 들리다.
뚜루버벅, 뚜루버벅,... 바퀴벌레 발자국 소리다.
은행에서 환전도 하고, 맛있는 망고쥬스도 마시고, 밥도 먹고...
와디할파에서 외국인 등록을 했지만 카르툼에서 또 경찰서에 신고를 해야 한다.
그 당시 경찰이 다른곳에서는 신고만 하고 별로도 비용이 드는 곳은 없다고 했는데...
실제로 동골라 경찰서에서 외국인 신고 할때 그냥 처리 되었고...
그런데 수도는 항상 각박하다.
카르툼 경찰서에 갔다. 몇시간을 찾아 헤메고, 또 몇시간을 기다려서
겨우 등록을 하려는데 돈 내란다.
나 : 왜?
경찰 : 489320ruwelfjweur023840$#@$%#$%!%
나 : 왜냐고?
경찰 : #@!$@#%#$%#$%#$@^#^#$
애고 답답해라...
옆에 보고 있던 수단계 영국인이 알려준다.
원래 카르툼에서는 수수료를 더 내는 거라고, 자기도 원래 수단 사람이지만 이해가 안간다고...
어쩌냐... 힘없는 외국인이... 수수료 냈다. 다행히 저렴하더라.
이제 이디오피아로 가야해서 비자를 받아야 한다.
론리플래닛에 있는 이디오피아 비자 받는데 필요한 서류는 다음과 같다.
1. 자국 대사관 추천장.
2. 왕복 항공권.
3. 건강 증명서.
4. 재정 증명서.
5. 여권.
내가 가진건 5번 여권 뿐이다. -.-
추천장은 어케 받는다 해도 항공권, 건강/재정 증명은 어케하지? 갑갑하다.
일단 이디오피아 대사관에 가서 필요 서류를 물어 보기로 했다.
호텔 매니저한테 이디오피아 대사관 가는 버스 번호를 물어보고 갔다.
난 필요 서류만 확인하러 갔는데 영사 인터뷰를 기다리란다.
그래, 기다리자.... 그리고 혹시나 해서 신청서도 작성했다.
드뎌 내차레.
영사 : 어서 오세요.
나 : 안녕하세요. 이디오피아를 방문하려고 하는데요.
영사 : 무슨일로요?
나 : 지금 아프리카 여행중인데 육로로 남아공까지 가보고 싶어서요.
영사 : 좋군요. 신청서와 여권 주시고 오후 3시에 다시 오세요. 비자 수수료 25$는 그때 지불하세요.
나 : 고맙습니다.
얼떨결에 비자 받았다. 론리 플래닛 넘들은 대체 머하는 넘들이냐.
이렇게 쉬운걸 괜히 걱정했다.
그날 오후 3시에 여권과 비자를 받았다.
카르툼은 수도 답게 거의 모든 편의 시설이 구비되어 있다.
대형 슈퍼마켓, 백화점, 식당 등등...
카르툼 시내를 꽤 여러곳 돌아 다녔는데 별로 기억 나는게 없다.
어디 가면 피라미드가 있다고 하던데(아마 동골라에서 몇시간 걸어야 할 곳이었다.)
외국인이 그런 유적을 방문하려면 돈내고 방문 허가증 받아야 한단다.
드러워서 안갔다.
수단 국민들은 정말로 착하고, 순박한데 정부는 아닌가 보다.
입국전에 수단에 대해서 들었던 그 위험함은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었다.
물론 내가 수단 전부를 돌아 다닌것도 아니고 많은 사람을 만나 본것도 아니지만...
수단에서 뭐가 기억에 남느냐고 하면 그저 "착한 사람들" 이다.
이집트에서는 콜라 한병 사먹을때마다 사기 당하는것 아닌가 하면서 긴장을 했는데
수단은 그런 걱정 전혀 없이 너무나 편하게 여행했다.(마음이 편했다는 뜻이다. 몸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어를 못하고, 모든 문자가 아랍어로 쓰여 있어서 간판도 읽기 힘든데도
여행을 하면서 어려운게 없었다.
말이 안통하면 내 손 붙잡고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는 경우도 많았다.
버스터미널에가서 이디오피아 국경행 버스표 사고 드디어 내일 이디오피아로 향한다.
수단 여행을 마친 지금 생각해 보면 수단에서 나한테 거짓말을 한 사람은
입국 심사 받으면서 비자 만료 된다고, 수수료 내고 연장하라고 한 그 넘뿐이 없다.
국경은 어디나 각박한 곳이니 충분히 이해가 간다.
내가 사하라 사막을 트럭타고 3일동안 왔는데 그깟 먼지구덩이 버스쯤이야...
어쨋든 카르툼은 수단의 수도이고, 대부분 국가의 수도는 살기 참 좋게 되어 있다.
카르툼에 도착하면 제일먼저 놀라는게 엄청난 비닐봉지 쓰레기다.
우리가 동네 시장에 콩나물 사면 그거 싸주는 검은색 비닐봉지.
그런 비닐봉지로 거리를 "포장" 해놨다.
제발 카르툼만 그래라. 저 봉지들 사하락 사막에 가져가지 말아라...
카르툼의 시작은 아주 순조로웠다. 론리플래닛에 있는 호텔도 금방 찾고
그닥 깨끗하지는 않아도 아예 화장실이 방에 없어서 이상한 냄새는 안난다.
안타까운건 바퀴벌레가 워낙 큰것들이 많아서...
얼마나 크냐하면 자다가 발자국 소리가 들리다.
뚜루버벅, 뚜루버벅,... 바퀴벌레 발자국 소리다.
은행에서 환전도 하고, 맛있는 망고쥬스도 마시고, 밥도 먹고...
와디할파에서 외국인 등록을 했지만 카르툼에서 또 경찰서에 신고를 해야 한다.
그 당시 경찰이 다른곳에서는 신고만 하고 별로도 비용이 드는 곳은 없다고 했는데...
실제로 동골라 경찰서에서 외국인 신고 할때 그냥 처리 되었고...
그런데 수도는 항상 각박하다.
카르툼 경찰서에 갔다. 몇시간을 찾아 헤메고, 또 몇시간을 기다려서
겨우 등록을 하려는데 돈 내란다.
나 : 왜?
경찰 : 489320ruwelfjweur023840$#@$%#$%!%
나 : 왜냐고?
경찰 : #@!$@#%#$%#$%#$@^#^#$
애고 답답해라...
옆에 보고 있던 수단계 영국인이 알려준다.
원래 카르툼에서는 수수료를 더 내는 거라고, 자기도 원래 수단 사람이지만 이해가 안간다고...
어쩌냐... 힘없는 외국인이... 수수료 냈다. 다행히 저렴하더라.
이제 이디오피아로 가야해서 비자를 받아야 한다.
론리플래닛에 있는 이디오피아 비자 받는데 필요한 서류는 다음과 같다.
1. 자국 대사관 추천장.
2. 왕복 항공권.
3. 건강 증명서.
4. 재정 증명서.
5. 여권.
내가 가진건 5번 여권 뿐이다. -.-
추천장은 어케 받는다 해도 항공권, 건강/재정 증명은 어케하지? 갑갑하다.
일단 이디오피아 대사관에 가서 필요 서류를 물어 보기로 했다.
호텔 매니저한테 이디오피아 대사관 가는 버스 번호를 물어보고 갔다.
난 필요 서류만 확인하러 갔는데 영사 인터뷰를 기다리란다.
그래, 기다리자.... 그리고 혹시나 해서 신청서도 작성했다.
드뎌 내차레.
영사 : 어서 오세요.
나 : 안녕하세요. 이디오피아를 방문하려고 하는데요.
영사 : 무슨일로요?
나 : 지금 아프리카 여행중인데 육로로 남아공까지 가보고 싶어서요.
영사 : 좋군요. 신청서와 여권 주시고 오후 3시에 다시 오세요. 비자 수수료 25$는 그때 지불하세요.
나 : 고맙습니다.
얼떨결에 비자 받았다. 론리 플래닛 넘들은 대체 머하는 넘들이냐.
이렇게 쉬운걸 괜히 걱정했다.
그날 오후 3시에 여권과 비자를 받았다.
카르툼은 수도 답게 거의 모든 편의 시설이 구비되어 있다.
대형 슈퍼마켓, 백화점, 식당 등등...
카르툼 시내를 꽤 여러곳 돌아 다녔는데 별로 기억 나는게 없다.
어디 가면 피라미드가 있다고 하던데(아마 동골라에서 몇시간 걸어야 할 곳이었다.)
외국인이 그런 유적을 방문하려면 돈내고 방문 허가증 받아야 한단다.
드러워서 안갔다.
수단 국민들은 정말로 착하고, 순박한데 정부는 아닌가 보다.
입국전에 수단에 대해서 들었던 그 위험함은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었다.
물론 내가 수단 전부를 돌아 다닌것도 아니고 많은 사람을 만나 본것도 아니지만...
수단에서 뭐가 기억에 남느냐고 하면 그저 "착한 사람들" 이다.
이집트에서는 콜라 한병 사먹을때마다 사기 당하는것 아닌가 하면서 긴장을 했는데
수단은 그런 걱정 전혀 없이 너무나 편하게 여행했다.(마음이 편했다는 뜻이다. 몸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어를 못하고, 모든 문자가 아랍어로 쓰여 있어서 간판도 읽기 힘든데도
여행을 하면서 어려운게 없었다.
말이 안통하면 내 손 붙잡고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는 경우도 많았다.
버스터미널에가서 이디오피아 국경행 버스표 사고 드디어 내일 이디오피아로 향한다.
수단 여행을 마친 지금 생각해 보면 수단에서 나한테 거짓말을 한 사람은
입국 심사 받으면서 비자 만료 된다고, 수수료 내고 연장하라고 한 그 넘뿐이 없다.
국경은 어디나 각박한 곳이니 충분히 이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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